로마는 이탈리아반도와 유럽, 북아프리카, 페르시아, 이집트까지 지배하였던 고대 최대의 제국이었습니다. 강성했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로마의 멸망과 화폐의 관계는 매우 깊습니다. 오늘은 화폐가 어떻게 로마 멸망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고대 지중해 무역의 기축통화 데나리우스
기원전 3세기 로마제국의 기축통화는 데나리우스 은화였습니다.
기축통화란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를 의미합니다. 1960년대 미국의 트리핀 교수가 주장했던 용어이며, 대표적으로 미국 달러가 이에 속합니다.
기축통화로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군사적으로 지도적인 입장에 있어 전쟁으로 국가의 존립이 문제 되지 않아야 하며, 통화 가치가 안정적이며, 기축통화 발행국은 다양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외환시장과 금융 · 자본시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1. 데나리우스 은화의 발행
로마제국의 데나리우스는 기원전 211년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 원로원에 의해 발행되기 시작하였으며, 당시 포도 농장 일꾼의 하루 일당은 데나리우스 은화 1개였습니다.
로마인들은 화폐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신전에서 화폐를 주조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유노 신전에서 처음으로 데나리우스 은화를 주조했으며, 기원전 1세기부터는 금화 아우레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초기에는 신들의 모습 등 종교적인 그림이 대부분이었으나 카이사르 시대부터는 황제의 얼굴을 데나리우스에 새겨 넣었습니다.
이후 데나리우스 은화는 대량으로 생산되어 지중해 지역의 중요한 화폐로서 지중해 무역을 활발하게 만들었습니다.
카이사르의 경제개혁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수석 집정관으로 취임할 당시 로마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를 겪고 있었습니다. 농경사회였던 로마의 부는 곧 토지였고, 이 토지의 양극화가 매우 심했습니다. 카이사르는 토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집정관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내세운 농지개혁법은 국가에서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해서 자작농을 양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집정관 임기 1년 안에 농지개혁을 이루어 혁명적인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카이사르는 화폐제도도 개혁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많은 전쟁으로 금과 은이 부족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로마 신전들의 봉납물을 활용해 화폐를 주조했습니다. 화폐의 뒷면에는 자기 얼굴과 카이사르 황제라는 문자도 새겨 넣었습니다.
또한 최초로 금화 아우레우스를 통화로 편입시키기도 했습니다. 로마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금화와 은화의 교환가치가 고정되어야 했는데, 그는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1:12로 고정시켰습니다.
화폐경제가 무너지게 된 저질 주화의 대량 유통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로마의 화폐가치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네로 황제부터였습니다. 네로는 시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세금을 내지 못한 시민에 대해 1년이 지나면 세금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세수 부족으로 국가재정은 어려워졌습니다. 이때 네로는 재원확보를 위해 금화와 은화에 약간의 구리를 섞어 유통시켰습니다. 국가재정이 점점 어려워지자 금화와 은화에 점점 더 많은 구리를 섞기 시작했습니다. 구리가 섞인 금화와 은화의 공급량이 늘자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1. 중국과의 무역적자로 은 부족 사태 발생
네로 황제 당시 로마의 은 부족은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원인이었습니다. 중국은 은본위제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비단, 도자기 등을 구입하기 위해 은을 지불했습니다. 이러한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늘어나면서 유럽에서는 은이 부족해져갔습니다.
2. 은화 데나리우스의 가치 하락
로마에서 은이 부족해지자 트라야뉴스 황제는 은화의 은 함유량을 15% 줄였습니다. 이후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25%, 셉티미우스 황제는 45%, 카라칼라 황제는 50%까지 데나리우스의 은 함유량을 줄였습니다.
데나리우스의 은 함량은 줄어들고 구리 함량이 늘어나자 처음 가치의 3분의 2가 사라졌습니다. 약 100년 동안 데나리우스의 가치 하락은 약 1만배 정도 되어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제 외국인들은 상품 대금으로 데나리우스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로마 정부마저 세금으로 데나리우스를 받지 않고 순은을 요구했습니다.
초인플레이션 발생으로 로마 경제의 몰락
데나리우스의 가치 하락, 곧 화폐가치의 하락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이어졌고, 로마경제를 늪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로마시민들은 화폐를 불신하고 물물거래를 시작했습니다.
금화나 은화 같은 화폐가 유통되지 않고 물물거래가 이루어지자, 군인의 급료도 생필품이나 곡물, 가축 등의 현물로 지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렵게 되자 외국에 주둔하던 군인들을 로마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중해 전역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쇠퇴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몰락은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시장경제의 파탄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상징이었던 도시는 시장의 붕괴와 함께 황폐해졌습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은 한 국가를 몰락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매우 큰 위협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국가나 정부, 정치도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로마제국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